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정유정/비룡소/2007
1986년 8월14일
우리가 만난 '거기'는 푸름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뒷산 기슭이었다. '토끼풀 언덕'이라 불리는 그곳으로 들어서면 세상은 저만치 멀어졌다. 마을에서 가깝고 근처에 금정사라는 큰절이 있었음에도 늘 첩첩산중처럼 고요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진데다, 산허리에 온갖 음산한 소문의 진원지인 '국립은애정신병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푸름 마을에서 은애 병원으로 연결되는 소로-사람들은 그 길을 '병원길'이라 불렀다. -가 언덕 위쪽의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있었지만 사람이나 자동차의 통행은 거의 없었다. 정적을 깨는 게 있었다면 언덕 옆 축견 농장에서 들려오는 개 소리 정도였다.
책의 서두에서 나오는 흔한 동네 풍경인줄 알았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보니 이런! 이 문단 속에 주인공들의 등장이 모두 예고 되고 있었다. 토끼풀 언덕느티나무 주인 준호, 과보호 속에 절로 들어간 승주, 한 많은 사연을 안고 정신병원에 들어간 할아버지, 축견 농장에서 버티며 살았던 정아, 그리고 루스벨트까지.... 좌충우돌 주조장 트럭짐 칸에 탑승했던 인원들은 우연이 아니라 저마다 사연과 계획을 가지고 함께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채 고생길이 시작된 우리의 준호. 규환이를 대신해 경찰에 쫓기고 있는 형에게 서류를 전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떠난 준호는 어쩌다 준호일행의 봉이 되어 이 고생 저 고생 말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준호는 어찌나 성격도 좋고 체력도 좋은지 주인공의 갖가지 고생들이 이책을 재미있고 속도감있게 만들어 주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또한 10대 만이 주는 앞뒤 가리지 않는 무모함과 혼자가 아니라는 서로가 주는 위안 덕분에 1980년대 광주라는 어두운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이 책은 유쾌하다.
"하느님은 참 괴상한 방식으로 공평해. 사랑이 있는 쪽에선 사람을 빼앗고 사람이 있는 쪽에서는 사랑을 빼앗아 가고." 정아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정아가 앞으로 가는 곳에는 사람과 사랑이 함께 하길 바래본다.
"네 고래는 안녕하니?" 한 여름밤의 꿈처럼 떠났던 준호 일행. 지금도 각자의 가슴 속에 멋진 고래를 품고 잘 살아가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