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인문역사

가녀장의 시대/이슬아/이야기장수/2022

smsnow 2024. 1. 10. 13:31

'왜 작가는 신문사나 출판사를 통해 독자를 만나야 하는가?' 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직접 구독자를 모집하고 일간 이슬아를 진행했다는 이슬아 작가! 멋지고 신선하고 당차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슬아 작가 또한 그러하다. 직접 낮잠출판사라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성공한 사람 답게 많은 일을 해나간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든 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좋은 너. 미운 너. 웃긴 너. 우는 너. 아픈 너. 질투 나는 너. 미안한 너. 축하받아 마땅한 너. 대단한 너. 이상한 너. 아름다운 너. 다만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인 너. 동물인 너. 죽은 너. 잊은 수 없는 너. 그런 너를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먹고 기억하는 나. 문학의 이유는 그 모든 타자들의 총합이다. 

 

그리고 그녀의 출판사에 취직한 모부 복희씨와 웅이씨. 복희씨는 출판사에 오는 메일을 처리하고 출판사 식구들의 식사를 담당한다. 이슬아는 복희씨에게 김장 보너스와, 된장 보너스를 지급하며 가부장 시대 때 처럼 무임으로 그녀의 노동력을 이용하지 않는다. 복희씨는 당근마켓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딸에게 직원복지 차원의 요가를 끌려 다닌다. 웅이씨는 딸의 운전기사며 출판사의 청소를 담당하고 있다. 오른 팔에는 청소기를, 왼팔에는 대걸레를 문신한 아름다운 아저씨다. 

 

복희가 기쁜 마음으로 무화과를 딴다. 복희에게 아름다움이란 계절의 흐름, 맑은 날에나 궂은 날에나 자라기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들, 웅이에게 아름다움이란 슬픔과 기쁨의 극치를 다 아는 가수의 목소리. 밥하고 글쓰는 두 여자. 슬아에게 아름다움이란 단정하고 힘있는 언어, 그리고 동료가 된 모부의 뒷모습.

지구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무엇보다 좋은 팀이 되고자 한다. 가족일수록 그래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  

 

젊은 작가의 생각이 신선했고 문체가 간결하면서 재밌었다. 그러면서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 감정, 내 마음을 울리는 모부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 따뜻해 지는 책이었다. 

 

슬아는 문득 복희가 없는 미래를 생각한다. 복희를 그리워하며 멈춰 있을 자신의 모습이 꼭 기억나듯 그려진다. 이미 겪어본 것처럼, 마치 오래전에 살아본 인생처럼 그 슬픔을 안다. 그는 지금 이 시절을 꽉 쥐고 싶다. 그러나 현재는 언제나 손아귀에서 쓱 빠져나가버린다.